
꽃미남에게 홀리면 약도 없습니다. 심지어 그게 여우라면요!
오늘 주인공 하사참은 취향이 아주 확고합니다. 길에서 마주친 15세 미소년 '황구랑'에게 첫눈에 반해 상사병으로 죽을 고비까지 넘기죠. 정체를 밝힌 여우 황구랑은 "나랑 엮이면 당신 죽는다"고 경고하지만, 하사참은 "죽어도 좋아!"를 외치며 직진합니다.
"사또가 괴롭힌다고요? 제가 여장하고 유혹해서 골로 보내버릴게요."
환생한 뒤에도 권력자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하사참을 위해 황구랑이 나섰습니다. 여장을 하고 '천마무' 춤 한 번에 사또의 혼을 쏙 빼놓더니, 결국 재산까지 털어 복수에 성공하는 이 기막힌 '브로맨스 복수극'! 지금 시작합니다.
(※ 주의: 여우의 사랑은 성별을 가리지 않으며, 그 대가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하자소는 초계 동쪽에서 서재를 열고 지냈다. 광야를 향한 문이 있어, 저물 무렵이면 간간이 지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나귀를 탄 부인과 그 뒤를 따르는 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부인은 쉰 남짓으로 의젓한 풍모였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소년을 보는 순간, 하자소는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열다섯여섯 살쯤 되었을까. 빼어난 용모가 아름다운 여자보다도 눈부셨다.
하자소는 평소 단수의 벽이 있었다. 소년에게 정신을 빼앗긴 그는 발끝을 세워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쫓다가, 한참 뒤에야 서재로 돌아왔다.
다음 날부터 그는 일찍부터 문 앞을 서성였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서야 소년이 지나갔다. 하자소가 반색하며 다가가 웃음 띤 얼굴로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이오?"
"외조부 댁에서 옵니다."
하자소가 서재에 잠깐 들러 쉬어가라 청했다. 소년이 바쁘다며 사양했지만, 하자소가 끈질기게 이끌자 못 이기는 척 따라 들어왔다. 성을 물으니 황씨이고 아홉째라 했다. 구랑이었다.
잠시 앉았다가 구랑이 일어서려 하자, 하자소가 문을 잠가버렸다. 구랑은 어찌할 수 없어 붉어진 얼굴로 다시 앉았다. 촛불 아래 이야기를 나누는 구랑은 처녀처럼 수줍고 따뜻했다. 유희 섞인 말이 나오면 얼굴을 벽으로 돌리며 부끄러워했다.
하자소가 함께 이불을 덮자고 했다. 구랑이 잠버릇이 나쁘다며 거절했다. 재삼 강권하자 마지못해 위아래 옷을 벗고 바지 차림으로 침상에 누웠다.
하자소가 촛불을 끄고 슬며시 다가갔다.
구랑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그대를 풍아한 선비로 여겨 함께 머물렀거늘, 이런 짓을 하다니. 이는 짐승이나 다름없소!"
새벽별이 뜰 무렵 구랑은 그대로 가버렸다.
하자소는 그가 다시 오지 않을까 두려워, 날마다 문 앞을 서성이며 기다렸다. 며칠이 지나 구랑이 다시 나타났다. 하자소가 반기며 허물을 사과하고 서재로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슬그머니 구랑 곁에 다가갔다.
구랑이 조용히 말했다.
"이어진 뜻은 이미 가슴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친애함이 반드시 이것이어야 합니까?"
하자소가 달콤한 말로 간곡히 청했다. 구랑이 마지못해 허락했다. 하자소는 구랑이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몰래 나아갔다.
구랑이 깨어나 옷을 끌어안고 밤을 타서 달아났다.
하자소는 이후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며 날로 야위어갔다. 매일 아이 종을 시켜 구랑의 소식을 수소문하게 했다.
어느 날 구랑이 문 앞을 지나다가 아이 종에게 이끌려 들어왔다. 수척해진 하자소를 보고 크게 놀라 위로하며 물었다. 하자소가 사실대로 고하자 눈물이 떨어졌다.
구랑이 가만히 말했다.
"제가 거절한 것은, 그대에게 무익하고 해가 될까 두려워서였습니다. 그대가 이미 원하시니, 어찌 아끼겠습니까."
하자소의 병이 며칠 만에 씻은 듯이 나았다.
구랑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마침내 함께 지내게 되었다. 구랑이 말했다.
"힘써 그대 뜻을 받들겠습니다. 다만 이것을 일상으로 삼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부탁이 있다고 했다. 어머니가 심장병을 앓고 있는데, 태의 제야왕의 선천단으로만 고칠 수 있다고. 하자소가 성에 들어가 약을 구해다 주었다. 구랑이 손을 모아 사례하며 말했다.
"외사촌 누이가 있는데 아름다움이 견줄 데가 없습니다. 원하신다면 중매를 서겠습니다."
하자소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다.
구랑은 사흘에 한 번씩 약을 구하러 왔다. 어느 날 의원 제씨가 하자소의 맥을 짚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귀신 맥이 나옵니다. 스스로 삼가지 않으면 위태롭소."
하자소가 구랑에게 이를 전했다. 구랑이 탄식했다.
"좋은 의원이군요. 저는 실로 여우입니다. 오래되면 그대에게 복이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하자소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약을 감추며 구랑이 찾아오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났다. 제씨를 불렀더니 고개를 저었다.
"진작 말씀하시지 않더니, 이제는 편작인들 어찌 하겠소."
구랑이 매일 찾아와 곁을 지켰다.
"제 말을 듣지 않으시더니, 과연 이에 이르셨군요."
하자소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구랑이 통곡하고 돌아갔다.
읍의 태사 하자소는 젊은 시절 간신을 탄핵하다 파직된 뒤 온갖 위협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을 맸다.
그런데 이튿날 밤, 그가 눈을 떴다.
"나는 하자소다."
집안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깨달았다. 이 몸을 빌려 하자소의 혼이 돌아온 것이었다. 그는 밖으로 달아나 옛 집으로 향했다.
순무는 그를 의심하여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천 금을 내놓으라 협박했다. 하자소가 거짓 승낙하고 근심에 잠겨 있을 때, 구랑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슬픔과 기쁨이 뒤섞인 채 이야기를 나눴다. 구랑이 또 가까이 다가오려 하자 하자소가 말했다.
"나는 살아서 고생하느니 차라리 죽어 편한 게 낫겠소."
구랑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다시 살아 만났으니, 배필이 없는 그대를 위해 예전에 말한 외사촌 누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꾀가 많아, 반드시 근심을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날 정오, 구랑이 한 여랑을 데리고 문 앞을 지나갔다. 하자소가 나가 이야기를 나누며 슬쩍 훔쳐보니, 아리따운 눈썹이 빼어났다. 참으로 선인 같았다.
구랑이 차를 청하자 하자소가 안으로 모셨다. 그리고 구랑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그대의 말로도 다하기 부족하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여랑이 자신을 위한 말임을 눈치채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자소가 밖을 돌아보며 외쳤다.
"나귀가 달아났소!"
구랑이 황급히 뛰어나갔다. 하자소가 여랑을 끌어안았다. 여랑의 얼굴이 자줏빛으로 변하며 구랑의 이름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녀가 말했다.
"강산에 맹세하여 버림받지 않게 해주실 수 있다면,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자소가 밝은 해에 맹세했다. 여랑이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구랑이 돌아왔다. 여랑이 얼굴을 붉히며 구랑을 꾸짖었다. 구랑이 말했다.
"이 분은 예전 명사이고 지금의 태사입니다. 믿을 만한 분이니, 어머니께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며칠 후 하자소가 근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여랑이 물었다. 하자소가 순무와의 얽힌 사정을 털어놓았다. 여랑이 웃으며 말했다.
"그건 구 오라버니 혼자서 풀 수 있습니다. 듣자니 순무가 아름다운 동자를 몹시 좋아한다 하니, 구 오라버니를 그쪽에 들이면 됩니다."
하자소가 구랑이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하자 여랑이 말했다.
"그냥 간곡히 청하십시오."
다음 날 구랑이 오자 하자소가 무릎을 꿇고 맞이했다. 구랑이 놀라며 말했다.
"두 세대의 교분인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목숨도 아끼지 않겠습니다. 어찌 이런 태도를 보이십니까?"
사정을 들은 구랑이 난색을 표하자, 여랑이 나섰다.
"제가 낭군에게 몸을 잃은 게 누구 때문입니까? 만약 중도에 저를 어찌 된다 하면, 저는 어디에 두시겠습니까?"
구랑이 마지못해 승낙했다.
친분이 두터운 왕 태사에게 편지를 보내 구랑을 그 자리에 이르게 했다. 왕씨가 크게 잔치를 열고 순무를 초청했다. 구랑이 여랑으로 꾸미고 천마무를 추니, 완연한 미녀였다. 순무가 한눈에 미혹되어 무거운 금을 내놓으며 구랑을 사겠다 했다.
왕씨가 짐짓 오래 뜸을 들인 끝에 하자소의 명을 받들어 구랑을 넘겼다.
순무는 기뻐하며 하자소와의 원한을 단번에 풀었다. 구랑을 얻은 뒤로는 열 명이 넘는 시첩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구랑의 대우가 왕과 같았고, 하사하는 금이 만으로 계산되었다.
반 년이 지나 순무에게 병이 났다. 구랑은 그가 곧 죽을 것을 알아채고, 금과 비단을 수레에 가득 싣고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이윽고 순무가 죽었다.
구랑은 그 재물로 집을 새로 짓고 살림을 갖췄다. 여랑과 어머니, 외숙모가 나란히 한 집에 살았다. 구랑이 외출할 때면 수레와 말이 화려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가 여우인 줄 알지 못했다.
포송령은 말한다. 남녀가 방에 거처하는 것은 부부의 큰 윤리이고, 음양이 바르게 통함이 마땅한 이치다. 소매를 끊고 복숭아를 나누는 길은 코를 가릴 추함을 면하기 어려우니, 사람이 반드시 올바른 길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구랑은 하자소의 위기를 자신의 몸을 던져 구했으니, 그 의리와 꾀가 가히 놀랍다 하겠다.
💡 Mark의 오컬트 Note: 단수(斷袖)와 천마무(天魔舞)
- 단수(斷袖)의 벽: 한나라 애제가 총애하는 남성 동현이 자기 소매를 베고 자자, 그를 깨우지 않으려고 소매를 자르고 일어났다는 고사입니다. 동성 간의 깊은 사랑을 뜻하며, 이 소설의 파격적인 소재를 상징합니다.
- 천마무(天魔舞): 황구랑이 순무를 유혹할 때 춘 춤입니다. 원래 불교 계통의 화려한 춤이지만, 문학에서는 남자를 홀리는 치명적인 관능미를 상징합니다. 황구랑의 '성별을 넘나드는 매력'이 극대화된 장면이죠.
- 이색적인 복수 방식: 도술이나 칼이 아닌, 상대의 '취향(남색)'을 공략해 파멸시키는 방식은 포송령의 날카로운 유머 감각을 보여줍니다. 부패한 관리가 자신의 탐욕(성욕) 때문에 자멸하는 과정을 풍자한 것입니다.
"여우에게 홀리는 것보다, 여우와 팀을 짜서 원수를 갚는 게 훨씬 효율적이네요! ㅎㅎ"
마지막에 덧붙여진 포송령의 평은 아주 적나라합니다. 음양의 이치를 거스른 주인공들을 비판하는 척하면서도, 결국 그들의 꾀가 부패한 관리를 때려잡았음을 익살스럽게 묘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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